개요
교토 어소에서 이용하는 방화 용수를 비와호 수로에서 송수하기 위해 정비된 것이 어소 수도입니다.
평상시에는 이 펌프 실내의 지하실에 있는 취수구에서 시내에 매설된 송수관을 통해 교토 어소에 저압으로 직접 물을 보내고, 비상시에는 약 30m 높은 위치에 있던 다이니치산 저수지에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린 후, 고저차를 이용하여 고압으로 송수하는 구조였습니다.
이 구 어소 수도 펌프실은 게아게 정박장의 물을 다이니치산 저수지로 퍼 올리기 위한 펌프가 설치되었던 시설입니다.
건축 양식은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비와호 수로에 접하여 토스카나식 오더 원기둥을 세우고, 동쪽 현관 상부에는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역사
어소 용수의 수량 부족 및 수질 오염에 시달리던 궁내성은 비교적 위생 상태가 좋은 물을 대량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어소로 송수하기 위해 어소 수도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하여, 1899년(메이지 32년)부터 수로 건설 공사 주임 기사를 맡은 다나베 사쿠로의 지도하에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이듬해 1900년(메이지 33년) 5월에 설계도가 완성되지만, 러일 전쟁 1904년~1905년(메이지 37년~메이지 38년)의 준비와 전비 조달을 위해 건설 사업비가 예산화되지 않은 채 몇 년이 경과합니다.
러일 전쟁 종전과 교토시 3대 사업이 정식으로 결정된 후에 정비 계획이 다시 부상하여, 1910년(메이지 43년) 5월에 제국 의회에서 공사 예산이 승인되어 같은 해에 궁내성 직영으로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사는 제2수로 및 게아게 정수장의 완성과 같은 시기인 1912년(메이지 45년)에 거의 끝납니다. 펌프의 설치, 통수 시험, 고압 분수 시험을 치룬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어 같은 해 5월 14일에 본 시설을 포함한 어소 수도가 준공되었습니다.
소화 활동으로는 과거에 단 한 번, 1954년(쇼와 29년)에 소어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기능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후, 송수관의 노후화로 인해 교토 어소에 필요한 물은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공급한다는 방침이 세워지고, 1992년(헤이세이 4년)에 송수관의 모르타르 사춤과 취수 시설이 철거되어 어소 수도 펌프실도 비와호 수로에서의 취수를 중단했습니다.
설계자 가타야마 도쿠마
설계는 당시 궁내성 내 다쿠미료(토건 업무를 맡은 기관) 다쿠미노가미(다쿠미료의 장관)였던 가타야마 도쿠마와 다쿠미료의 기사 야마모토 나오사부로입니다. 가타야마는 제국 교토 박물관(현 교토 국립 박물관) 및 동궁 어소(현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 등의 설계자로서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가타야마의 아내 다나베 테루는 다나베 사쿠로의 누나로, 어소 수도 신설 공사에서 가타야마는 처남에 해당하는 다나베에게 다쿠미료 고요가카리(궁내성의 명령에 용무를 담당하는 직업)의 협력을 구했습니다.